어제 갑자기 미디어들이 일제히 스페인의 잘못된 열차구입으로 철도공사(RENFE)사장을 포함한 관계 관료 사임이 줄이었다는 보도를 뿌려댔습니다. 뭔가 좀 의도하는 게 있는 거 같지만, 보도 내용이 좀 지리멸렬해서 사안을 너무 단순하게 보도하는 감이 있습니다.
일단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발주한 차량이 지켜야 할 차량한계와 건축한계의 불일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 과격하게 표현을 해서 “터널보다 큰 차량”이라는 이야기가 나왔고, 외신 보도에서는 이걸 퍼포먼스해서 터널에 줄자를 들이대는 사진도 나오고 있지만, 아마도 실제로 터널의 단면적보다 큰 차를 발주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거고, 곡선에서 터널의 폭원 확장 기준이 현재의 것과 달라서, 새로 발주한 장대형 내지는 저상 확폭형 차량이 곡선 터널을 지나면서 옆구리를 긁게 되는 그런 사태가 벌어진게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이 문제의 가장 큰 본질은 이른바 리거시(Legacy) 문제입니다. 실은 이번 사안의 대상이 되는 노선들은 RENFE 산하라고 하지만, 실은 2012년 이전에는 협궤철도를 상하일체형으로 전담하던 협궤철도공사(FEVE)가 관할하던 노선들이고, 이 FEVE는 다시 1965년의 개혁에서 각 지역에 산발적으로 존재하던 사철이나 지자체의 협궤선 일체를 인수받아 이베리아 궤간 광궤선 전담의 RENFE와 병행해 설립된 조직이었습니다. 즉,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각각 노선이 건설 경위에서 전부 따로 노는 그런 노선들이었다는 이야기고, 실제 노선들도 산악노선, 트램형 노선, 낙도노선 등이 제각각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사업 합리화를 위해 미터궤로 단일화를 하긴 했지만 인수 시점에서 궤간 종류가 750mm, 914mm, 1000mm, 1067mm을 가지고 있었고, 이후 표준궤까지 일부 관할해서 5개 궤간을 가진 회사였다고 하니 그 난맥은 이루 말할 바가 없다 할겁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협궤선은 수요가 부족한 산악이나 격오지, 또는 식민지 지역에서 건설비의 최적화를 위해 골라지는 19세기의 철도 방식입니다. 따라서 터널과 곡선은 가능한 한계까지 삭감하는 경우가 흔했고, 따라서 단면적이 많이 좁을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FEVE이후 궤간 통일을 하면서 아마도 개량사업이 일부 적용되기도 했겠지만, 이런 근본적인 제약이 있는 터널들은 딱히 손을 못대는 수준이었을 겁니다. 또 저런 한계의 측정과 적용 방법도 현 시대의 표준방법과 달라서, 계산공식이 다르거나 했을 가능성도 다분합니다. 좀 러프하게 말하자면, 19세기에는 곡선반경도 미터가 아닌 영국식을 따르면 야드 피트도 아닌 체인이라는 단위를 쓰고, 구배 표기도 천분율인 퍼밀이 아니라 분수를 써서 표기하는 시스템이었던지라, 곡선 산출도 현대적인 클로소이드 곡선이 아닌 더 심플한 기준을 적용했을 가능성도 다분할거고 말입니다. 실제로 현지어 보도중에서는 EN 15273이라 불리는 차량한계 유럽 표준을 반영했네 말았네 이야기가 있는 걸 보면, 뭔가 잘못된 기준 적용이 관련이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사실 이 문제는 유럽에서는 두번째 발생한 사안인데, 첫번째 케이스는 2014년에 불거졌던 프랑스에서 였습니다. 이야기가 좀 빙 도는지라 간략하게 말하자면 SNCF가 발주한 일반철도용 차량이 승강장보다 커서, 차량의 옆구리가 파손되는 그런 사태가 벌어졌던 거였습니다. 당시 도입한 차량은 배리어 프리를 위해 저상승강장 높이에 맞춰서 바닥이 설정된 광폭차량이었는데, 문제는 1950년 이전에 건설된 구닥다리 노선의 승강장 건축한계가 현용과 완전히 다른 것이었고, 그간 일반형 객차는 객차 바닥이 높게 있어 이 건축한계를 건드리지 않아 문제가 안되었다 새 차량은 이보다 크고 낮아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번 스페인 사례는 이것과 유사한 경우인 셈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언론들이 많이 거북해서 떠들지 않는 거 같은 부분이지만, 이 문제에서 사실 공동책임이 부과된건 운영담당의 RENFE만이 아니라 하부시설을 관리하는 시설관리자 ADIF도 해당된다는 점입니다. 프랑스의 경우 꽤 지리멸렬한 청문과정이 을 통해 도출된 결과는 시설관리자인 RFF가 SNCF측이 요구한 건축한계 자료에 부적절하게 대응했고, 문제가 된 리거시 노선들에 대해서 사실상 아무런 관리를 하지 않아서 부랴부랴 승강장을 개축하는 등의 예산낭비가 생겼던 점이 문제가 되었던 바였습니다. 둘 간의 의사소통에 상당한 문제가 있었다는게 인정되어, 안그래도 말이 나오던 차에 두 조직을 한 지주회사로 묶어서 사실상 단일계열화하는 통합을 단행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번 경우도 시설관리자측인 ADIF가 건축한계 등에 대해 제대로 정보확인을 하지 않고 부적절하게 대응했고, RENFE 측과 제대로 의사소통을 하지 않아, 사업을 장기 순연시켰고 이를 어물어물 은폐 방치하고 있던 부분이 가장 큰 비난 대상인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이 경우는 더 나아가서 두 기관이 사후적으로 인수한 FEVE소관의 시설과 차량을 이어받은 거기 때문에, 여기서 발생한 공백까지 있었던 것일거고 말입니다. 여기에 이 협궤선 관리 문제는 그 노선망의 대부분이 특정 지역, 대부분이 스페인 북부의 산간 벽지들이어서 해당 지자체들로서는 많이 빡치는 그런 사안이 되다보니, 정치적 이슈까지 되어 두 기관의 대표에 교통부 관료에까지 이르는 경질 사태로 이어지게 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